발렌타인데이 유마오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은 평소보다 알록달록했다. 테이블 위에 쌓인 상자들, 소파 위며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포장지들, 한 쪽 구석으로 밀려난 리본들. 아. 미쿠모는 보자마자 깨달았다. 초콜릿들이구나. 저만큼으로도 모자라, 쇼핑 봉투 가득히 담긴 초콜릿들은 아직 꺼내지지도 못한 채 소파 옆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이 정도 초콜릿은…
"어서 와!"
"오늘 간식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초콜릿이야―"
코나미가 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작은 하트 모양 초콜릿을 들어올리며 인사를 건네고, 뒤를 이어 우사미가 웃으며 세 사람을 반겼다. 아마토리가 눈이 동그래져서 대단하네요, 초콜릿… 이라며 중얼거렸다. 요타로가 의기양양하게 "당연하지, 오늘은 초콜릿의 날이니까!"라고 하는 것을 코나미가 살짝 꿀밤을 먹이며 "네 것도 아니면서 자랑하지 마!"라고 대답하는, 시끌벅적하고 온화한 타마코마의 금요일.
"전부… 카라스마 선배가 받은 겁니까?"
굉장한 양에 미쿠모도 흠칫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우사미가 예쁜 분홍색의 초콜릿을 집어들며 카라스마 대신 대답해 주었다.
"응, 응. 토리마루는 학교 말고도 아르바이트라던지,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맘대로 먹어도 괜찮습니까?"
그래도 카라스마 선배가 받은 건데. 그러자 한 쪽에 앉아 초콜릿을 가끔씩 집어 먹던 카라스마 본인이 손을 저으며, 이리 와 앉으라는 듯 미쿠모 일행을 불렀다.
"하나 먹을 때마다 이 초콜릿을 준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면 남의 것을 먹어도 저주받지 않아."
"에엣―?!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거야? 그런 거야?"
"살면서 앞으로 먹을 수 있는 디저트의 갯수가 하나씩 사라져버리는 저주입니다, 코나미 선배."
"안 돼, 나 이 초콜릿 왕창 먹었는데 토리마루에게 준 아이의 얼굴 같은 거 모른다구!"
"코나미 선배, 그거 거짓말."
쿠가가 평소의 풀어진 표정으로 끼어들며 요타로 옆에 앉았다. 요타로 옆에 앉아 있던 휴스도 아무 말 없이 초콜릿을 집어 먹고 있었다. 정말 초콜릿 파티가 따로 없다. 발칵 화를 내는 코나미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미안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카라스마가 자백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거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니까."라고 우사미가 중재 아닌 중재를 하고 있었다.
"되도록 각 초콜릿 박스에서 하나씩은 먹으려고 하고 있어."
그 논리적인 것 같으면서 의외인 공평함은 뭐지… 미쿠모도 엉거주춤 손을 뻗어 초콜릿을 하나 집었다. 우사미가 계속 권하기도 했고, 요타로와 휴스가 맛있게 먹고 있어 입 안에 조금 침이 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마도 꽤 받았는걸? 초콜릿."
우사미의 안경이 반짝거렸다. 쿠가도 초콜릿이 몇 개인가 담긴 크지 않은 봉투를 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쿠가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이런 걸 다 주고."라고 했지만, 미쿠모도 오늘 보았다. 같은 반이니까. 쿠가는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생긴 외모에 쿨한 성격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건 꼭 이성으로가 아니라도 그랬다. 거기다 외국에서 자랐다는 신비함이나, 미카도 시로 오자마자 보더에 입대에 미쿠모와 함께 금방 정대원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쿠가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 학교에서는 꽤 유명인이었다. 반 여자아이들은, 아니, 같은 반이 아니더라도, "쿠가 군은 발렌타인데이를 알고 있어?"라던지, "모를 것 같아서 챙겨주고 싶었어"라던지 말을 걸며 초콜릿을 전해주었다.
"먹을 것을 그냥 막 주다니, 역시 일본은 좋은 곳이야."
"유마 군, 그건 호감의 표시야. 그냥 막 주는 건 아니야."
아마토리가 웃으며 설명했다.
"호감의 표시?"
"응, 유마 군이 좋다는 뜻이야."
호오― 쿠가가 받은 초콜릿을 꺼내 신기한 듯 눈으로 훑었다. 말로 하지 않고 이런 걸로 전달한다는 말이지, 흠흠. 쿠가의 작고 통통한 손에 들린 초콜릿은 귀여운 분홍색 종이로 예쁘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마 저건 의리 초코는 아닐지도… 생각하며 미쿠모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한 쿠가를 보고 있었다.
"오사무 군은? 안 받았어?"
그런 미쿠모를 부른 것은 기대에 찬 얼굴의 우사미였다.
"아, 저…"
"받았구나? 우와― 대단한걸?"
마치 기특한 일을 했다는 듯한 얼굴로 웃는 우사미의 말에 미쿠모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랬다, 미쿠모도 받았다. 신발장에 들어 있어 누가 주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예쁜 리본이 정성스레 달린 초콜릿이었다. 의리 초코가 아닌 초콜릿은 처음 받아보는 터라, 초콜릿을 발견하고 미쿠모는 처음에는 눈을 크게 떴다가, 얼굴이 달아올랐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후다닥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오, 정말? 오사무?"
초콜릿 상자를 이리저리 뜯어보던 쿠가가 반짝 고개를 들고 물었다. 미쿠모는 얼굴이 더 달아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해서 말까지 덧붙이며. 흠, 흠, 오사무도 인기인이네. 쿠가가 웃었다.
한바탕 단 것을 잔뜩 먹고 나서 "이 이상 먹으면 저녁을 못 먹을 거야!"하고 외치는 코나미 덕분에 초콜릿 상자들은 하나씩 닫혔다. 요타로가 아쉬운 얼굴로 보고 있었지만 (어쩐지 휴스도 그래 보였지만) 단호하게 테이블을 정리하는 키자키에게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미쿠모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정리했다. 일단, 아까 신발장에 있던 초콜릿을 꺼내고.
"…아, 이거."
초콜릿을 하나 더 꺼낸다.
"필요 없겠지…?"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손 하나 정도 크기의 초콜릿. 고민하다 어제 늦게 결국 슈퍼마켓에서 구입했다.
일본의 문화며 음식을 좋아하는 쿠가를 보면 더 알려주고 싶었다. 발렌타인 데이는 꼭 일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운 날이니까 쿠가도 초콜릿을 받으면 기뻐하겠지― 생각하며 진열대에서 몇 십 분을 고심했다. 화이트 초콜릿이 좋을까, 아몬드가 든 것이 좋을까, 아니면 쌉싸름한 녹차 초콜릿도 있고.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바뀌는 동안 끙끙대며 고민한 끝에 고른 것은 결국 가장 평범한 밀크 초콜릿.
하지만 오늘 쿠가는 초콜릿을 잔뜩 받았다. 초콜릿을 받는 쿠가를 보며, 차라리 등굣길에 미리 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산 게 아까우니까'라는 변명을 굳이 자신에게 해가며. 처음 양갈래 머리를 한 반 친구가 가볍게 쿠가에게 초콜릿을 건네줄 때까지만 해도 하굣길에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후에 다른 여자아이가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을 쿠가에게 가져왔고, 그 다음에는 다른 반의 모르는 아이가 고급 초콜릿 가게의 것으로 보이는 상자를, 그리고 많이 대화해본 적 없는 같은 반 여자아이가 무려 "만들었다"며 서툴게 포장된 초콜릿을. 하굣길에 주면 되겠지 하던 생각은 망설임으로, 주지 말까 하는 생각으로, 역시 주는 거 이상하지 라는 의심으로, 안 주는 게 좋겠어 라는 결심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미쿠모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밀크 초콜릿은 다들 좋아하니까. 어머니께라도 드려야겠다.
"오사무!"
그 때 쿠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쿠, 쿠가."
"앗, 미안. 문을 열기 전에 노크, 였지?"
"됐어……."
체념한 듯한 미쿠모의 목소리에 씨익 웃으며 쿠가가 곧 저녁 먹는다는데, 하고 전해왔다.
"응, 곧 나갈 테니… 쿠가?!"
"그건 뭐야?"
불쑥 시야에 들어온 복슬복슬한 흰 머리카락에 미쿠모가 놀란 듯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손에 들고 있었던 초콜릿은 가려지지 않았다. 쿠가는 시선을 초콜릿에 고정시킨 채 물었다.
"아까 받았다는 그거야?"
"아, 아니."
"또 받은거야? 오사무 굉장한데."
"아니, 이건……."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오사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뭔가 핑곗거리를 찾아보았지만, '어머니께 드릴 거야'도, '맛있어보여서 샀어'도, 모두 부분적으로는 거짓말이었다.
"……쿠가를 주려고…… 산… 거야."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쩐지 방 안이 덥다고 생각하며 꼭 쥔 초콜릿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평범한 밀크 초콜릿. 거기다 오늘 '여자아이들한테서만 초콜릿을 받았다'라는 걸 쿠가가 깨달았을까, 그럼 이걸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하는 걱정까지 더해져 오사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쩐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그 때, 아이 같은 하얗고 통통한 손이 덥썩, 오사무의 손과 겹쳐졌다. 놀라서 무심코 얼굴을 든 오사무 앞에 활짝 웃고 있는 쿠가의 얼굴이 보였다. 천진한 눈이 반으로 접히고 아이같이 작은 입이 밝게 미소짓는, 미쿠모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쿠가의 웃는 얼굴.
"그거, 제일 기쁜데."
겹쳐진 손이 뜨겁다고 생각하는 순간, 쿠가가 초콜릿을 미쿠모의 손에서 빼들었다.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미쿠모는 몰래 숨을 내쉬었다. 팔이며 어깨에 단단하게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빠지는 것 같았다.
"정말 기뻐, 오사무."
"아니, 이건, 그냥, 그러니까……."
"고마워."
"……응."
웃는 얼굴이 정말로 기뻐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응, 이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더 좋은 걸로 살 걸 그랬지…
"오사무의 호감의 표시."
그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진열대 앞을 서성이며 계속 고민했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누군가에게 무엇을 줘 본 적은 미쿠모도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여자아이가 주는 날이니까. 하지만 쿠가에게는 알려주고 싶어서, 주고 싶어서, 아마 신기해하겠지 상상하면서. 아몬드와 녹차와 화이트와 밀크, 다크… 몇 십 분을 열심히 고민했다.
"이, 이상하지? 미안, 쿠가, 이건 그냥 혹시 오늘…"
"미안, 나는 준비 못 해서."
"…어?"
"알았으면 나도 줬을 텐데."
고개를 들자 천진한 얼굴로 웃고 있는 쿠가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오사무를 좋아하니까."
쿠가의 말이 머릿속으로 천천히 입력되었다. 좋아하니까. …무슨 뜻으로? 안도감과 혼란스러움과 기쁨과 조금의 두근거림이 합세해, 오사무는 안경 밑의 양 볼이 붉어졌음을 스스로도 느꼈다. 정말로, 결코 난방을 세게 트는 법이 없는 타마코마 지부 2층 복도 끝의 방 안은 이상하게 더웠다.
"대신 이거, 같이 먹어도 돼? 오사무."
"방금, 곧 저녁 먹는다고……."
"괜찮아, 괜찮아."
쿠가가 밀크 초콜릿의 상자를 뜯었다. 일본에서 가장 평범하고 밋밋한, 네모난 초콜릿을 들어 오사무에게 건넨다.
"역시 맛있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쿠가 앞에서 미쿠모는 또 마음이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든 초콜릿을 입 안에 넣었다. 달콤한 밀크 초콜릿이 입 안 가득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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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사귀고 두근대며 썸타는 유마오사를 아무래도 좋아하나 봅니다 자꾸 그런 것만 쓰게되고;
세이님께 드리는 쪼꼬레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