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 로맨스 / 타치진(아라) 조각글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 도시에도 벚꽃은 핀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을 따라 걸으면 곧 돌담이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무리 뒤를 쫓다 보면 회갈색 마무리를 끝으로 돌담이 멈추는 곳에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진 유이치는 아직 어색한 가쿠란의 목깃을 만지작거렸다. 오늘부터 고등학생이 된다.


입학식에 오겠다고 분주하던 모가미 상을 가라앉힌 것은 불규칙 게이트 발생이었다. 아니, 가라앉혔달까… 무척 화가 난 얼굴로 따라 나가기는 했지만, 2층으로 나갔다가 3층으로 들어온 시노다 상을. 아직 보더는 창설된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기관이었고, 대규모 침공을 막은 이후에도 꽤 자주 출몰하는 네이버와 싸우기 위해서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랐다. 작년 쯤 추가로 대원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보더는 정착하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었다. 키도 상이나 상층부의 어른들이 며칠씩 밤을 새가며 일에 매달리는 것을 진도 여러 번 보았다. 트리온체니까 좀 안 자도 괜찮지 않나? 실제 몸은 자고 있으니까 말이야, 라며 모가미 상은 달력에 「유이치 입학식」이라고 적어 넣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입학식 같은 것은.


학교에는 원래 그다지 흥미도 없었고, 별로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고. 이렇게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 와 봐야 입력되는 정보가 너무 많아 머리만 아프다. 쟤랑 쟤는 한 달 뒤면 사귀겠구나, 다음 시험 1등은 저 아이겠구나, 아, 불쌍하게도 저 아이는 이지메당할거야. 어떤 미래를 무시하고 어떤 미래에 개입할지 골라내는 일도 열여섯 살에게는 버겁다. 자살하는 미래가 보였다고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감시해 봤자 미친놈 취급을 당할 뿐이다. 그런 건 이제 충분히 당했으니까.


입학식을 시작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진은 무리에서 떨어져 있기로 했다. 방금 눈앞에 있던 아이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빳빳한 새 가쿠란을 입은 아이의 앳된 얼굴을 열심히 카메라로 찍고 있는 부부는 한 달 뒤에 이혼한다. 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몸을 빙글 돌렸다. 빨리, 사람이 없는 곳으로― 뒷문 쪽이면 되려나, 뭐라고 했더라, 타치카와 상이―


「아, 오늘도 말이야 소각장 옆에 숨었다고, 끈질기게 따라와가지고!」


그래, 분명 잔뜩 화가 난 선생한테 쫓겨서 숨었다고 했다. 소각장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뒤편으로 가면 나오지 않을까. 내일 배탈이 날 아이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면 어차피 모가미 상도 오지 않을 거, 식이 끝날 때까지 쭉 거기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학교 건물 주변으로 벚꽃 잎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입학식의 낭만이라고 하면 역시 설렘이나 긴장, 그리고 그런 마음을 어지럽히는 벚꽃잎. 날씨도 맑고 쾌청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이상적인 입학식을 하기 딱 좋은 날이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거나, 같은 반이 되고 싶은 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거나, 뭐 그런. 그런데도 그런 낭만과는 일체 거리가 먼 진 유이치는 건물 뒤편 소각장이나 찾고 있다. 우스운 기분 절반, 귀찮은 기분 조금과 한심한 기분 약간이 섞인 발걸음이 터덜터덜 학교 뒤쪽으로 향했다.


"여어―"


모퉁이를 돌던 발을 멈춰 세운 것은 엄청나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사람을 보지 않으려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타치…"


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치카와가 웃음을 터트렸다. 예고 없이 맞닥트린 얼굴에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을 테니, 분명 그걸 보고 저렇게 신나게 웃는 것일 테다. 너무 즐거워하는 것 아닌가 싶어 진은 조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웃는 게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치카와가 있다는 것은 여기가 바로,


"소각장."


―이라는 것일 테니까. 아니, 이제 생각까지 읽나.


"…으로 올 줄 알았지."

"어떻게?"

"내 사이드 이펙트가 그렇게 말해줬어."

"'그렇게 말하고 있어'야, 타치카와 상."

"그거나 그거나."


따라하지 말라고, 투덜거리며 진은 타치카와의 옆에 주저앉았다. 소각장이라고 해도 별로 타는 냄새나 매캐한 연기 같은 것은 나지 않는다. 오늘은 입학식이니까. 이곳까지 날려 온 벚꽃 잎이 발끝에 닿았다. 아마 소각장과 가까운 뒷문 쪽에도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 모양이다. 타치카와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올려다 본 하늘은 파랗고 맑아, 금방이라도 구름에 파란 물이 배일 것 같았다. 


"…날씨 좋다."

"진, 방금 내가 예지를 또 하나 했는데 말야."

"뭔데."

"'너는 앞으로 자주 땡땡이를 칠 것이다.'"


―라고 내 사이드 이펙트가 말하고 있어, 라며 타치카와는 웃었다. "이번에는 안 틀렸어, 그 세리프." 진은 한숨을 쉬었다. "땡땡이의 대가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지금도 땡땡이지?" 할 일 없는 열여섯 열일곱은 입학식 날마저 학교 뒤편에서 땡땡이나 치고 있다, 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진은 이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핀잔을 주려고 했던 말인데 덕분에 웃음기가 실려 장난을 거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아냐, 오늘 건 땡땡이가 아니라,"

"응?"

"환영회라고, 환영회."


타치카와는 나름 진지한 표정이었다. 농담을 받아주지 않는 타치카와는 오랜만이라, 진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타치카와를 쳐다보았다. 


"진짜로 여기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니까?"

"헤에…."

"헤에…가 아니라, 내가 이겼다고, 이번 예지는."

"흐음…."


아, 진짜, 타치카와는 진의 시원찮은 반응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 그래, 입학식 해 줄 테니까."


발끈하다가도 타치카와는 아이처럼 금방 풀리곤 한다.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고 타치카와는 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격자무늬의 눈과 마주친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 진은 타치카와를 빤히 쳐다보았다. 타치카와가 코게츠를 휘두르는 미래와 부대원을 영입하는 미래 같은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격자무늬의 눈이 눈꺼풀에 덮였다 다시 나타났다. 빙긋 웃은 타치카와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 유이치의 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진은 눈을 깜빡였다. 


"내 후배가 된 것도 축하합니다."


사족을 붙이고 타치카와는 기분 좋은 듯 하하핫, 하고 웃었다. 어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할 만한 것이… 두리번거리다가 땅에 떨어져 있던 벚꽃잎 한 장을 주워들고는 다시 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직 어색하고 뻣뻣한 가쿠란을 입은 어깨를 한 쪽 손으로 붙잡고, 타치카와의 다른 쪽 손이 진의 얼굴로 가까워졌다. 흡, 진은 숨을 삼켰다. 작은 벚꽃잎을 든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을 만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투박한 손은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잠깐 떨어졌다가, 다시 몇 가닥을 잡아 조심스럽게 옆으로 넘겼다. 타치카와의 손으로 시야가 가려져 눈앞이 까맣게 덮였다. 진은 다시 눈을 깜빡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금, 말도 안 되는 미래를 보았다… 


타치카와의 손이 임무를 마치고 머리카락에서 멀어졌다. 동시에 어깨를 잡고 있던 손도 떨어졌다. 손이 멀어지는 것과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눈앞의 타치카와가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입학 증서는 벚꽃잎으로 하자."


아직도 어깨가 붙잡힌 것처럼 무거웠다. 싸우면서 수없이 부딪쳤던 손이 그깟 머리카락을 좀 만졌다고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 방금 본 것 때문일 것이다.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 눈앞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보이는, 


"진?"


생각해 본 적 없는,


"뭐야, 너 왜 그래? …앗, 입학식 종 울린다."


눈앞에 보일 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은…….


"……거짓말이겠지, 설마……."

"아냐, 진짠데? 종소리."

"아니, 그거 말고…"


각각 다른 이유로 혼란스러운 한 명과 어리둥절한 한 명을 놔두고 입학식을 알리는 소리가 교내에 울려 퍼졌다. 신입생들은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입생들은 강당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에코가 섞인 안내 멘트의 끝에 타다닥, 뛰어오는 발소리가 섞였다.


"진!"


모퉁이를 급히 돌아 불쑥 나타난 얼굴에 땡땡이를 치던 두 명은 벌떡 일어났다. 그런 둘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아라시야마도 마찬가지였다.


"타치카와 상도 있었네요?"

"아, 뭐, 어…."

"입학식인데, 진이 보이지 않아서―"


분명 전에 같은 학교라고 했는데. 많이 찾으러 다녔는지 숨을 고르며 아라시야마는 안심했다는 듯 웃었다. 그래, 전에 말해준 적이 있다. 타치카와보다 조금 더 늦게 보더에 입대한 아라시야마는 동갑이기도 하고 코나미의 사촌이기도 해서 일찍 소개를 받았다. 분명 그러고 나서 몇 달인가 뒤에, 고등학교 입학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아라시야마가 일반교에 갈 생각이라는 말을 해서 그럼 같은 학교에 다니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으니까. "찾아서 다행이야, 진."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며 진은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 녀석하고 사귀는 미래는 전에 보았는데 말야. 


아라시야마는 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늦겠어. 어서 가자, 진. 어쩔 도리도 없어 진은 엉거주춤 발을 뗐다. 타치카와의 시선이 느껴졌다. 


"앗, 잠깐만."

"응?"

"벚꽃이 붙었어."


진의 한 쪽 손을 잡은 아라시야마의 다른 쪽 손이 얼굴로 가까워졌다. 아, 데자부…는 아닌가. 아직은 낯선 손이 진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건드렸다. 조심스럽고 가볍게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은 곧 다시 떼어지고,


"됐어, 이제."


그대로 벚꽃잎을 들고 아라시야마는 맑게 웃었다. 가자, 진.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사람은 웃거나 울거나, 둘 중 한 가지인가. 웃음에 섞인 난처함을 아라시야마는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며 진은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아라시야마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벽에 기대어 서서, 타치카와가 둘을 보고 있었다. 


"먼저 가 볼게요, 타치카와 상."

"어어, 이따 봐."


대답해 주며 타치카와는 팔짱을 꼈다. 아. 진은 문득 깨달았다. 타치카와가 보고 있었던 건 두 사람이 아니라 벚꽃. 아라시야마가 진에게서 떼어 들고 있는 그 가볍고 얇고 부드러운 잎을 보며 웃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직 아라시야마랑 사귀는 미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못 정했다고…….


사람은 종종 과거의 자신을 탓하고는 한다는데. 밀린 일을 하면서, 은행 잔고를 보면서, 아니면 숙취에 시달리면서. 진은 아라시야마에게 붙들린 손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 된 녀석이기에 사귀는 사람과 자는 사람이 다른 걸까. 아닌가, 그거 혹시 분기점 뭐 그런 건가. 아니면 저쪽하고 자고 나서 이쪽하고 사귄다던지, 좀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이……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붙어있던 머리카락과 타치카와가 붙잡았던 어깨와 아라시야마에게 붙들린 손 모두를, 장난을 치듯 간질이고는 사라졌다. 강당 쪽에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원래 입학식 같은 것은 올 생각이 없었는데. 아라시야마의 날개 같은 머리카락 위로, 연분홍의 벚꽃잎이 파란 하늘을 어지럽히고 날아갔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거나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거나, 뭐 그런 일이 일어나기 딱 좋은 날이다.


그런 낭만과는 일체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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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전쟁터에도 장미는 핀다 뭐 이런 거였는데 너무 비장해 보여서;;

염소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_< 단문 아닌 글을 넘나 오랜만에 써서 괜찮은가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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