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killer / 토마나라




키스를 금지당한 지 사흘째다. 토마 이사미(21)는 재미없는 휴대폰 게임을 하다 슬쩍 눈을 들어 건너편을 쳐다보았다. 얼마 전 새로 사놓은 좌식 테이블 앞에 매정한 연인이 앉아 리포트를 쓰고 있다. 한 입 베어진 사과가 그려진 노트북 화면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나라사카의 왼쪽 뺨을 비추었다. 노트북을 왼쪽으로 옮겨 놓은 나라사카는 앞에 책을 펼쳐 놓고 무언가 노트에 정리하는 중인 것 같았다. 어차피 토마는 봐 보았자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른다. 토마가 아는 것은 나라사카가 바쁘다는 것. 바빠서 치과에 갈 시간도 며칠째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나라사카는 한 쪽 뺨이 아주 살짝 부었다. 오랜 시간 가만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의 붓기이기는 하지만, 눈썰미 좋은 토마가 그것을 못 알아챌 리 없다. 사실 볼이 붓기 전부터도 어딘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눈썹과 눈썹 사이를 계속 살풋 찡그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디 아파?」라고 물으면 나라사카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랬다가 마침내 사흘 전에나 알게 되었다. 그날따라 토마는 괜히 나라사카가 예뻐 보였고, 심야 영화를 방영해주고 있는 TV에서 결국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고 말았고, 옆에서 뚫어져라 영화에 몰입한 나라사카의 속눈썹 끝을, 마찬가지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슬슬 턱을 움직였었다. 그 때, 토마의 어깨 살짝 밑에 닿아있던 나라사카의 어깨가 움찔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거부, 의문, 확답의 순으로 이어지는 똑같은 세 문장이 공기 중을 울리는 동안 토마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라고 말하는 토마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나라사카는 심지어 한 쪽 손을 들어 입을 가려 버렸다. 


「이가…… 아파.」





―그렇게 된 것이다. 이가 아프니 나라사카는 입을 사용하는 무엇도 내키지 않아 했다. (여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덕분에 토마도 재미없고 나라사카도 재미없는 나날이 며칠째 계속되었다. 토마는, 뭐, 여러 이유로 재미가 없었고 나라사카는…… 좋아하는 간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 덕분에 며칠째 계속 저기압이다.


사랑니가 났으면 빨리 치과에 가서 뽑으면 될 것을. 하지만 나라사카는 정말 바빴다. 4월, 중간고사 기간이었으니까. 대학에 가지 않은 토마는 대학생이 얼마나 바빠질 수 있는지 나라사카를 보면서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 주변의 (친한) 대학생이라고 해 봐야 타치카와 케이나 이누카이 스미하루인데 둘 다 노느라고 바쁘다. 그래서 토마는 대학생 나라사카 군도 그다지 바쁘지 않을 것이라고, 완전히 착각하고 말았었다. 나라사카 토오루는 그 쪽이 아니라 아라후네 테츠지 쪽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방위 임무 때문에 시험을 빠져야 했던 나라사카는 현재 성실하게도 대체 리포트를 쓰는 중이다. 아마 시험기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치과에 갈 생각인가보다, 하고 토마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럼 그때까지 계속 금지일 거 아냐.

...아니, 잠깐, 사랑니는 뽑고 나서도 한동안 아프다는데.


토마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맞긴 했다. 시험은 아마 길어야 다음 주쯤이면 끝나겠지만 사랑니의 치료 과정은 사람에 따라 몇 주고 이어질 수도 있다. 나라사카의 말에 따르면 토마는 아직 '철이 없어서' 사랑니가 안 난다고 한다. 그래서 대단히 철이 있으셔서 사랑니씩이나 나신 스무 살 연인은 아프다는 이유로 키스를 거부하고 있나. 그것도 초코 과자 못 먹어 저기압인 상태로. 어쨌든 이래저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철이 없는 것 치고는 토마도 상당히 오래 참아 주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먼저 더 하자고 했던 주제에.


토마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에는 아까 전부터 게임 오버 스크린이 떠 있었지만 이미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한참 전부터 토마는 어딘가 억울해진 기분으로 나라사카 쪽만 멀뚱하니 보고 있었다. 토마 정도만 알아채게 볼이 부은 나라사카처럼 토마도 뚱하게 조금 볼이 부었다. 


열여덟, 첫 키스도 아니었는데 나라사카와 처음으로 입술을 겹쳤을 때 토마는 당황하고 말았었다. 생각보다 더 부드러웠던 입술, 생각보다 더 작았던 입 안. 단정하게 내리깐 속눈썹은 생각보다 더 가까웠고 심장은 생각보다 더 빨리 뛰었다. 여러 모로 전혀, 토마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았다. 


입 안에 들어가긴 했는데, 혀를 어떻게 움직여야 좋을지 몰랐다. 좋아하는 것도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초코과자인 나라사카의 입 안은 혀 두 개가 얽히기에는 비좁아서, 토마는 말캉한 나라사카의 혀를 감싸 건드려 보다가 어쩔 줄을 모르고 가만히 멈추었었다. 바싹 붙은 얼굴 사이로 뜨거운 숨이 섞이고 심장은 더없이 세게 쿵쾅거렸다. 몇 번 더 혀를 얽어보던 토마가 망했다는 심정으로 먼저 입술을 뗐다. 아, 젠장, 젠장, 처음도 아닌데. 그 때 눈을 깜빡거리던 나라사카가 말했다. 「토마 상. ……한 번 더 해.」 평소 사기인형처럼 하얗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한 번 ㄷ……」 나라사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입술을 겹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말을 하는데.


그래놓고서는 사귄지 3년 정도 되니 이제 금지령까지 내린다. 토마라고 나라사카가 아파서 싫다는 걸 억지로 할 생각은 없으니 잠자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싶다. 토마는 건너편에 앉은 나라사카를 흘깃거리다 슬쩍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았던 자리에서 옆자리까지, 슬슬 자리를 옮겨 책에 집중하고 있는 나라사카를 내려다본다. 동그란 머리를 차분히 덮은 단정한 머리카락, 곧게 뻗은 가지런한 속눈썹, 끝이 살짝 올라간 코 끝, 그리고 그 밑의,


입술.


며칠간 닿아 볼 생각조차 금지당한 작은 입술이 꾹 다물려 있다. 이 정도면 사람이 갈등을 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뭐 아프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귀는 사이에 키스 조금 하자는 건데. 이게 아마 못 하게 하니까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까지 키스라는 것에 신경 써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안 돼’라고 하니 왠지 참아주다가도 반발심이 생기고,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고, 해보지 않으면 아픈지 안 아픈지 어떻게 아냐 싶기도 하고, 또 그 날처럼 오늘따라 왜 예뻐 보이나 싶고, 볼이 살짝 부어서인가……


그 부은 볼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토마가 깨달은 것은 잠시 후였다. 그렇게 입맛만 다시며 내려다 보다 평소보다 통통해진 한 쪽 볼이 살짝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공부를 할 때 토마가 옆에 와 앉는 것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기에 나라사카는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토마는 알아챘다. 바쁜 손과 함께 아마 나라사카의 혀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픈 이를 톡톡 건드리며, 입 안에서.


사람이라는 동물은 이상하다. 아픈데, 분명 유쾌하지 않은 감각인데 어쩐지 아픈 부위를 자꾸 만지는 습성이 있다. 치통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건드리면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 저절로 혀가 아픈 곳을 향한다. 이 사이를 건드리거나 잇몸을 톡톡 치거나 혀로 문지르거나, 어떻게든 계속 아픈 부위에 자극을 가한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는 고통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가까워진 토마를 눈치 챘는지 나라사카가 고개를 돌리고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토마의 얼굴에 살짝 커진 눈을 했다. 토마 상? 하고 의아한 듯 부르는, 그 입술. 녹색 눈동자가 한가득 토마를 담고 있다. 아마도 자기가 금지시켰으니 토마가 순순히 그 금지령을 따라줄 줄 아나보다. 이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지. 


나라사카, 하고 부르면 눈을 깜빡이며 토마를 응시한다. 연필을 쥐고 있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잡고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테이블 위에는 소중한 노트북이 있다. 테이블이 흔들려 노트북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반항은 적은 편이 좋겠다. 점점 가까워지는 토마의 얼굴에, 그제야 알아챈 듯 나라사카가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래 봤자 이미 다른 쪽 팔로 나라사카의 허리를 감싼 뒤다. 


어차피 그렇게 계속 혀로 건드릴 거라면 말이야… 내가 건드려 주면 되잖아?


명쾌한 해답을 찾아낸 토마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가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나라사카의 얼굴 위로 토마는 고개를 숙였다. 손을 붙잡고 허리를 감쌌으면 다음 차례는 뻔하다. 입술을 겹치며 토마는 힘이 뻣뻣하게 들어간 나라사카의 상체를 천천히 밀어 넘어트렸다. 스무 살 나라사카 토오루의 입 안은 열일곱 그 때와 다르지 않다. 토마의 혀가 들어가면 꽉 차는 입 안에서, 더 이상 굳어있던 열여덟 살이 아닌 토마 이사미는 부드럽게 혀를 움직였다. 부드럽고 말캉한 입 안, 축축한 혓바닥이 얽혔다. 혀끝으로 나라사카의 입 속을 건드리면 나라사카는 미간을 찡그린다. 토마는 잠시 입술을 떼었다.


“사실은 그렇게 안 아픈 거 아냐? 나라사카.”


결이 고운 갈색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바로 위에 자리한 토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나라사카가 짐짓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가 났으니 풀어 줘야지, 안아 주면서, 키스해 주면서, 


“알고 있다고, 아파도 잘 참는 거…”


칭찬해 주면서. 

토마의 손이 나라사카의 바지춤으로 향했다. 그걸 나라사카가 최대한 늦게 알아채도록, 다시 입술을 포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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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월;에 트위터 쪽에 올렸던 글입니다. 
수줍님(@cocatrigger)의 생일 축하 선물로 드렸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이제야 이쪽에 백업을..;;

그 외에 아직 백업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차차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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