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토마 생일 소재 글 <공평한 것이 좋아>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새 창으로 뜹니다.)

<공평한 것이 좋아> 시점에서 1년 후 다시 돌아온 토마 생일. 짧고 가볍습니다.






불공평해도 좋아 / 토마나라





좀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동그란 머리통을 수건으로 살살 문질러주면서, 하긴 이런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하고 금세 체념했지만. 그런 남의 속도 모르고 나라사카 토오루는 토마 이사미의 손에 완전히 뒤통수를 맡기고 얌전히 앉아 있다. 하긴, 뭐 어쩌겠는가. 나라사카가 둔해 빠진 일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토마는 수건에 양손을 얹고 나라사카의 작은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다 머리카락을 털어주었다. 원래라면 산뜻하게 찰랑거릴 갈색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가닥가닥 뭉쳐 있다. 나라사카는 선만 가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도 가늘어서, 토마가 가볍게 털어 주는 대로 갈색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흔들린다. 나라사카는 꽤 훌륭한 머리카락을 (색이 예쁘고 결이 고우며 찰랑거리는 생머리)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머리 손질 하는 법을 모른다. 대충 기르다 미용실에서 자르고 다시 기르고의 반복. 딱히 그래서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나라사카가 토마의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되면 머리를 말려주는 건 늘 토마의 몫이 되어 있었다. 늘. 매번. 정말이지 지극정성이 아닐 수 없다.


몇 번 털어 물기를 어느 정도 제거한 뒤, 토마는 옆에 놓았던 헤어 드라이기를 집어 들었다.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든 기계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나라사카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드라이를 해 주기 시작한다. 따뜻한 바람과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이 좋았는지 소파 아래 앉아 있는 연인이 버릇처럼 조금 더 등을 기대어왔다. 어디의 고양이야, 이건…….




그 고양이는 폭우 속 쫄딱 젖어 토마의 집 벨을 눌렀었다. 우산도 소용없는 날씨였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통 비에 젖은 채로 나라사카는 아연실색한 토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늘이지?」


오늘이긴 했다. 오늘이 토마의 생일이자 둘이 놀러가기로 한참 전부터 정했던 날이 맞긴 했다. 다만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왔을 뿐.


「아니, 메일 보냈잖아, 나라사카!」


흠뻑 젖어 (토마의 눈에) 가련하게 떨고 있는 연인을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이며 토마는 드물게도 소리쳤다. 「분명히 한 시간 전 쯤에 보냈잖아, 오지 말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라사카의 눈동자에 드물게도 당황이 스쳐지나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하고 나라사카는 눈을 깜빡였다. 


「휴대폰… 젖을까봐 가방에 넣어 놓고…….」


―그리고 메일도 확인할 틈 없이 폭우를 한 시간 동안 뚫으며 도달한 것이다, 토마의 집에.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억척스럽다고 해야 할지 융통성도 없다고 해야 할지. 그냥 폭우도 아니고 분명 오늘 미카도 시는 태풍 영향권 안이다. 자칫하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나라사카는 전부터 그랬다. 토마라면 생각도 못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실행에 옮겨 버린다. 작년에도 그랬다. 어떤 선물을 맘에 들어 할지 몰라 이것저것 사느라 한 달 치 용돈을 다 써버리는 면이 있는 줄은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좀더 계획적으로 사는 녀석인줄 알았지….


물론 토마도 알고 있다. 나라사카가 평소 얼마나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딱 한 사람 앞에서만 그 절제를 잃는다는 걸,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사귀며 토마도 눈치 챘다. 가장 좋은 선물을 하고 싶어서 한 달 치 용돈을 탈탈 털고,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몇 시간을 기다리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 현관에서 꾸물대고… 원래도 눈치가 빠른 토마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라사카가 "자신이 토마를 더 좋아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건 기분 좋은 것과는 별개로 억울한 면이 있다. 분명 먼저 나라사카의 손목을 끌어당겨 입술을 부딪치는 것도 (보통은) 토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초콜릿 간식거리를 (특히 편의점 초코과자를) 떨어지지 않도록 때맞춰 꼭꼭 채워놓는 것도 토마, 어디를 가자고 먼저 제안하는 것도 토마, 심지어 처음으로 자동차를 뽑아 놓고도 첫 시승식은 나라사카와 하겠다며 나라사카의 시험 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특하게 꾹 참고 기다린 것도― 토마. 아, 마지막 것은 참고로 토마가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마자 나라사카 쪽에서 거절했다. 「토마 상, 왠지 위험할 것 같으니까 혼자 연습 좀 하고 와. 그 다음에 같이 타 줄 테니까.」 「뭐? 너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당연한 듯이 머리를 말려주는 것도 토마다. 그런데 어째서 이쪽의 애정은 그렇게도 눈치 채지 못하는 거야. 인형 같은 얼굴을 하고 곰보다도 둔한 연인의 무방비한 뒤통수를 꽁 때려 줄까 싶다가도, 토마는 결국 사락거리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헤집고 만다. 먼저 반하는 쪽이 진다고… 누가 먼저 반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나라사카 녀석 분명 자기 쪽이라고 생각하겠지.


둔해 빠진 연인과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연애를 하고 있다. 얼마나 불공평하냐 하면, 태풍 때문에 계획이 완전 틀어져 김이 샌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데 저쪽은 그걸 모른다. 쫄딱 젖었던 나라사카는 샤워하고 나온 뒤로 아무 말이 없다. 평소에도 별로 말이 많지는 않으니 본인은 별다른 티를 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제나 되어야 알아챌까, 사실은 엄청 티난다는 걸. 


캐러맬색 머리카락이 다 말라간다. 공기 중에는 샴푸 향이 맴돌았다. 아마 토마의 머리카락에서도 똑같은 향이 날 것이다. 나라사카는 토마의 손에 얌전히 머리를 맡긴 채로 조용하다. 드라이기의 바람 소리 사이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폭우에 젖어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셔츠와 바지 대신, 나라사카는 작년에 토마의 것으로 잘못 사 왔던 고양이 무늬 잠옷을 입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에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토마가 입은 것도 똑같은 고양이 무늬 잠옷. 나라사카가 잘못 사 왔던 것보다 한 사이즈 크다. 작년 생일이 지나고 함께 사러 갔었다. 


토마는 한숨을 쉬고 드라이기의 버튼을 눌러 껐다. 귓가를 울리던 바람소리가 멈추자 순식간에 조용해진 집 안에 빗소리만 장식처럼 들렸다. 밖에서는 분명 빗줄기가 땅을 세차게 때리고 있을 텐데, 집 안에서는 그 소리가 어쩐지 운치있게 들린다. 빗물에 흠뻑 젖었던 머리카락은 이제 완전히 말라 토마의 손가락 사이를 사락거리며 빠져나간다. 머리를 빗어 주는 토마의 손길에 나라사카가 뒤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녹색 눈동자가 사랑스러워 토마는 할 수 없이, 한 번만 더 져주기로 했다.


"나라사카, 비 그치면 산책이라도 할까?"


가만히 토마를 보던 나라사카가 다시 홱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그칠 것 같은데."

"내일은 그친대."

"……내일까지 있으라고?"

"자고 가면 되잖아."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던 뒤통수가 작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아마 원하던 말을 들었으니 곧 기분도 풀리겠지. 토마의 입꼬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비죽 올라가고 말았다. 하긴, 불공평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고양이는 좀 이기적이어야 귀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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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와 현실로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토마 생일은 꼭 어떻게라도 축하해 주고 싶어서 급하게 썼습니다. 8ㅇ8

토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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