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하는 토마나라 연말대청소 하(다 망하)는 글
(제목을 못 정해 죄송합니다...)
또다. 방 안이 조용하다. 뭐라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경고를 하고 다시 베란다쪽으로 돌아온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아직. 연말대청소를 할 테니 분명히 제대로 방 청소를 하라고 걸레도 줬고, 버릴 물건들을 넣을 상자도 하나 넣어 줬고. 나라사카는 불안한 마음에 유리창으로 돌렸던 시선을 다시 방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국, 다리를 움직였다.
"토마 상―…?"
이름을 부르며 살짝 틈을 두고 닫힌 문을 밀었다. 서서히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넓은 등은 평소의 체스말 마크가 그려진, 어쩐지 기분을 아릿하게 하는 부대 유니폼이 아니다. 회색 맨투맨 티에, 밑에는 트레이닝복보다 츄리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바지를 입고 주저앉은 토마 이사미의 뒷모습이다.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목뼈가 도드라졌다.
"토마 상."
이름을 연거푸 부르자 그제서야 알아챈 듯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준다.
"아아, 나라사카, 이거 봐, 이런 걸 발견했는데 말야―"
"그―러―니―까― 딴짓은 이제 그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까부터 분명…!"
"으앗, 미안, 하지만 진짜 이거 한 번만 보라니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손에 들어 내미는 것은, 손바닥만한 인형. 양반다리를 하고 속도 편하게 앉아 있는 토마의 앞으로 그 외에도 비슷한 크기의 인형이 대여섯 개, 열쇠고리 장난감 같은 물건들이 또다시 대여섯 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고양이 피규어 같은 것들이 열 몇 개 잔뜩 펼쳐져 있다. 모두 토마가 오락실에서 상품으로 타온 것들이거나 마을 축제에서의 전리품이거나 지나가다가 귀엽다는 이유로 산 물건들이다. 그래, 토마 이사미는 스무 살이 한참이 지난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오락실에도 가고 고양이 피규어 같은 걸 산다. 한숨을 쉬는 나라사카의 기색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토마는 자랑스럽게도 떠들었다.
"기억나? 이거, 그때 내가 축제에서 딴 거잖아."
"……"
"그때 그 아저씨 표정 볼만했는데―"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토마 이사미는 애초부터 사격 게임에서는 받아주지 않게 된 지 오래라서 주변에서 입맛만 다시다가, 마침 해보고 싶어하던 나츠메를 만나 나츠메의 마지막 한 발을 이어받아 인형을 열 댓개나 땄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토마 때문에 어쩌면 이제 나츠메도 내년부터는 사격게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될 지도 모른다. 나츠메에게 두 발은 네가 쏘고 마지막 한 발만 좀 넘겨달라며 부탁하던 모습도, 토마가 악당같은 미소를 지으며 총을 받아 들자 주인 아저씨의 입이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던 것도, 전리품인 인형들을 주루룩 늘어놓고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하나 골라내던 것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총구를 겨누던 모습이 평소처럼 멋있었으니까, 인형을 세상 진지한 얼굴로 고르던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으니까.
비록 고른 인형이 슈퍼마리오에 나오는 버섯돌이라 하더라도.
토마의 생각이야 뻔하다. 거기서 버섯을 고르면 뭔가 감동할 줄 알았겠지. 이게 대체…….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인형을 받아들고 아무 말이 없던 나라사카를 멋대로 오해하고는, 토마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얼굴에는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나라사카는 토마의 오해를 놔두기로 했다. 인형 때문은 아닐 것이 분명한데 손에 든 인형을 보면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한 것은, 그때 토마의 기분이나 생각 같은 게 인형 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사카와는 너무나 다른 토마가 그때그때 가졌던 감정 같은 것.
"나라사카아― 무슨 생각 해?"
눈앞에서 빨간 버섯 인형이 흔들렸다. 토마가 인형을 좌우로 흔들며 나라사카를 올려다보고 있다. 헛, 정신을 차린 나라사카의 눈앞에 여전히 너저분하게 늘어진 장난감더미가 보였다. 정리하고 방 청소 좀 하라며 쥐어준 걸레는 저쪽 방 한구석에 밀려나 있고, 정리를 한답시고 그나마 책장에 얌전히 앉혀놓았던 인형들의 죄 끌어내려 늘어놓은 탓에 이곳은 아기방인가 싶은 지경이다.
"…어쩌다…… 이런 사람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
"와, 그거 너무하네."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얼굴로 웃으며, 토마는 주섬주섬 인형들을 끌어당겼다. 아까부터 바닥에 늘어놓은 모양만 조금씩 바꾸고 있지 저걸 상자에 담는다던가 어디 올려 놓는다던가 하는 건 없다. 그러니 정리가 될 턱도 없다.
토마와 살며 한숨만 늘어난 나라사카가 하는 수 없이 빈 상자를 가져와 내려놓았다. 조그만 앉은뱅이 의자 정도 들어갈까 싶은 크기의 상자는 아마 저 정도 물건을 담기에는 괜찮은 크기일 것이었다.
"자, 당장 필요 없거나 안 꺼내놓을 것들은 여기에 담아."
"필요 없는 건 없어, 나라사카 군."
말끔히 무시하고 일단 문어모양 인형을 나라사카가 손수 집어넣었다.
"아, 나라사카!"
"…?"
"그건 나라사카가 딴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 많은 것들 중에 나라사카가 딴 건 그거 딱 하나라고?"
근데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넣어버릴 수가 있어―투덜대며 토마가 재빨리 손을 뻗어 문어 인형을 구출해주었다. 나라사카는 딱히 오락에 취미도 없고, 사격 게임이나 조금 하는 정도였지만 그나마도 그렇게 해서 받은 상품들은 히우라나 나스를 주어버리기 일쑤라 정작 상품을 타오는 일은 드물었다. 문어 인형은 토마를 따라 오락실에 가 보았을 때 받은 것이다. 토마를 기다리다가 나라사카도 한번 인형 뽑기에 도전해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크레인으로 인형을 뽑는 것은 총으로 쏴 떨어트리는 것과 상당히 달라서, 게다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라사카는 꽤나 고전했다. 한 번 동전을 넣어 두 번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별로 너그럽지는 않은 기계 앞에서, 나라사카는 세 번째의 동전을 넣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번엔 꼭―
「오, 나라사카도 하는 거야?」
불쑥 들려온 토마의 목소리에 흠칫한 나라사카는 또다시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거 어렵지? 하고 붇는 토마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나라사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한 번 더 남았어'라고 답했다.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나라사카.」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나라사카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을 거의 노려보다시피 하며 집중했다. 크레인을 살짝 왼쪽으로 옮기고, 조금 위로 올라가게 해서, 여기서 아주 조금 오른쪽으로, 아까는 좀 너무 많이 갔던 감이 있으니까―
「엇, 걸렸다, 걸렸다!」
갈고리에 무언가가 걸렸다. 조금 위로 들어 올리니 확실하게 걸려든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였다. 문어 인형이었다. 아까부터 노리고 있던 바나나인형 바로 옆에 있었던.
「좋아, 나라사카, 조심해서 끌어올려!」
토마가 신나서 소리쳤다. 나라사카는 잠깐 이걸 떨어트리고 다시 시도할까 고민했다. 그 짧은 2, 3초 사이에 굉장한 무게감의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이걸 떨어트리고 다시 시도하면 왜 떨어트렸냐고 하겠지? 이렇게 확실히 걸렸는데 일부러 떨어트린 게 많이 티나겠지? 뭐 따로 원하는 게 있는 거냐고 다시 묻겠지…? 그럼, 바나나 인형이라고……
나라사카는 문어 인형을 끌어올리기를 선택하고 말았다. 토마 앞에서 '사실 바나나인형을 가지고 싶었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아, 정말 그깟 인형이 뭐라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금 우울했다. 인형은 토마를 줘 버렸다. 줘 버렸다고 해도, 어차피 같이 사니까 집안 어딘가에 장식될 예정이겠지만.
"별로… 버려도 상관없는데, 그런 것."
"너무하네, 문어쨩에게 사과해, 나라사카."
"…미안, 문어."
장단을 맞춰주며 나라사카는 본격적으로 인형을 구분해두기 위해 토마의 옆에 앉았다. 나라사카가 장난을 받아주니 기분이 좋은 듯, 토마는 구출해 낸 문어 인형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피다 가볍게 입을 맞췄다.
"뭐 하는 거야, 토마 씨."
"나라사카의 마수에서 구출해 낸 공주님한테 키스해주는 거야."
싱글싱글 웃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문어 공주님을 감히 버리려고 했던 나라사카 마왕님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 기세면 분명 하나도 못 버린다. 이것들이 뭐 그렇게 소중하다고. 아니, 진짜. 뭐 그렇게 소중하다고 인형은 공주님이고 애인은 마녀 취급이― 퍼뜩, 질투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라사카의 귀가 아무도 모르게 붉어졌다.
아, 정말이지. 이래서 싫었다. 이래서 토마 상과 좋아하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게 되는 것도 이렇게 쓸데없는 데 반응하게 되는 것도 전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다. 늘 정확하고 냉정하고 싶었다. 기분이라는 게 이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인지, 토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문어쨩에게는 추억이 있으니까 제외야."
그리고 이 열쇠고리는 우리가 자주 가는 꼬치구이집 옆 가게에서 받은 거고, 이건 영화 보고 나오던 길에 샀던 거고, 이건, 기억나? 같이 그 새로 개장한 수족관에서 경품으로 받은 거― 장난감들을 버려질 위기에서 구출해내기 위한 필사의 변명이 지치지도 않고 줄줄이 이어졌다. 사실 필사까지는 아닌 것 같고, 뒤로 갈수록 목소리에 장난기가 더해지는 걸 보니 하나하나 제외할 때마다 나라사카가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럼, 이 고양이."
"아, 그건…."
오락실 뽑기 기계에서 토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꼬박꼬박 뽑아 시리즈를 모으기 시작했던 고양이 미니인형들이다. 이 콜렉션이야말로 아무 추억도 없고 토마의 기호만 있을 뿐이니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어… 그건… 나라사카를 떠올리면서 뽑은 거니까…."
"토마 씨, 장난은 진짜 이제 그만―"
양손에 고양이 미니 인형 하나씩을 들고 무방비한 나라사카의 눈썹 사이로, 순식간에 토마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진짜야, 닮았잖아."
당장 상자 안에 인형들을 넣으려던 나라사카가 그대로 정지해 눈을 깜빡거렸다. 토마의 숨이 닿았다 떨어졌던 갈색 앞머리가 살짝 흐트러졌다 다시 돌아왔다. …버섯 인형 때 같다. 나라사카는 할 말을 잃고 토마를 보고 있었다. 닮았다고 하면……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알고 또, 또 이런 식으로.
"「나라사카가 버리려고 들고 있을 때 고양이를 든 나라사카에게 무심코 키스하고 말았던 추억」"
"……."
"―이 생겼으니까, 이제?"
하지만 그런 토마에게 약한 것은 사실이라, 매번 토마의 이런 방법이 먹히고 만다는 걸, 나라사카도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쉽게 타인에게 좌우되는 모습을 상상도 한 적이 없다, 토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영화관 앞 노점에서 파는 열쇠고리 같은 게 의외로 귀엽다는 것도, 꼬치구이집 옆에 장식용 인형 같은 걸 파는 가게가 있었다는 것도, 새로 개장한 수족관에서는 꽤 재미있는 이벤트를 한다는 것도, 그런 것 하나하나 모두, 토마를 만나고 처음 알았다. 스무 살도 넘은 지금까지도 겪어보지 못한 처음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 역시, 처음 알았다.
"…입술이 아니면 키스로 카운트 안 해."
어쩐지 부루퉁하게 나가버린 목소리에, 토마가 키득키득 웃으며 허리를 굽혀 왔다. 밀려들어오는 따뜻하고 익숙한 혀를 받아내며 눈을 감았다. 사실 감동인 부분은 나라사카를 떠올리며 뽑았다느니 어쩌니 했던 것보다 전에 있었다. ……언제 산건지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방바닥에는 토마가 늘어놓은 추억들이 잔뜩 있었다. 정말로 하나도 못 버리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나라사카는 토마의 목 뒤로 팔을 감았다. 손에는 아직 고양이 인형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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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_ㅠ;
연말을 맞아 연말대청소하는 토마나라입니다만,
사실은 1월 7일 디페스타에 낼 (예정인) 책의 후일담 같은 느낌으로 써보았습니다.
디페스타에 내려고 원고 중이긴 합니다만
올 겨울이 제게 좀 가혹해;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ㅠ_ㅠ 노력해보겠습니다 흑흑...
무사히 나오게 될 것 같으면 트위터와 이곳에 둘다 공지를 올릴테니 잘 부탁드립니다ㅜㅜ
물론 이제와서 며칠 후 공지 올린다 해도 홍보하기 꽤 늦어버렸다는 건 알고 있지만요 ^_ㅠ;;;